정승 묘 곁에 소 무덤이라니. 놀라움과 기이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경기도 광주시 직동(곧은재) 영장산 자락. 사람과 짐승 사이를 넘나드는 묘한 정(情) 같은 것이 두 봉분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묘와 그가 생전에 타고 다니던 검은 소의 무덤 흑기총(黑麒塚)을 처음 찾았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타고 다니던 소의 무덤을 만들어 준 '온화한 선비'

맹사성은 황희와 더불어 세종의 치세기를 열었던 조선 청백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연시조로 알려진 '강호사시가'를 남긴 이다. 고불(古佛)이라는 호는 "등이 구부정하다 하여 스스로 지었다"는 말과 "불교식 제사를 지내며 아버지를 높여 부른 호칭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맹사성은 충남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신창 맹씨다. 그런데 충청도가 고향인 맹사성의 묘가 왜 경기도 광주에 있는 걸까? 고불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신을 본가인 온양으로 옮길 때였다. 상여가 잠깐 쉬는 동안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명정(죽은 자의 관직명을 쓴 깃발)이 지금의 산소 자리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세종이 "그곳이 길지이니 그곳에 장례를 치르라"고 명했다. 그리고 사패지를 하사하여 맹사성의 묘를 쓰게 하였다. 일대에 신창 맹씨 후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영장산은 별칭으로 맹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광주문화원 자료 인용).

맹사성과 관련된 일화가 많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소 무덤 이야기다. 어느 봄날, 맹사성은 온양 집 뒤 설화산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검은 소를 보았다. 그는 아이들을 나무라고는 주인 없는 소를 데려와 정성껏 길렀다. 그러곤 이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서울과 온양을 오갔다고 한다.


그 인연은 죽어서도 이어졌다. 맹사성이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소는 사흘 동안 먹지 않고 울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맹사성이 "내가 타던 소를 내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는데, 신창 맹씨 대종친회에 물어보니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유언은 없다"고 했다.

충직하고 신기한 짐승의 죽음에 감동한 후손들은 맹사성 묘 곁에 소를 묻고, 흑기총(黑麒塚)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후손들은 지금도 해마다 소 무덤을 벌초하고, 술도 올린다고 하니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청렴의 길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않았던 '참 선비'

맹사성은 삶 자체가 청렴이었다. 정승임에도 남루한 옷차림을 고집했고, 집은 비가 새었으며, 먹거리는 관에서 주는 녹미(祿米: 관리의 녹봉으로 지급했던 묵은쌀)만 먹었다. 그의 청렴함은 단순한 검소함을 넘어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중국 명대 말기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에 "진정한 청렴은 이름조차 없다. 이름을 얻으려는 그 자체가 탐욕이다(眞廉無廉名 立名者正所以為貪)"는 말이 나온다. 이름 없는 청렴, 그게 바로 맹사성이었다.


고전 속 인물을 더듬어보면 맹사성과 달리 청렴을 가장해 명예를 쌓은 인물도 있었다. 중국 한나라의 재상 공손홍(公孫弘)이 이에 속한다. 영조의 일성록(日省錄: 국왕의 국정을 기록한 책) 한 단락을 인용해 본다.

영조: "공손홍은 어진 재상이었느냐?"
신하: "베 이불을 사용하여 검소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속임수가 많았습니다."
영조: "베 이불을 사용한 것은 검소한 것이 아니냐?"
신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은데도 공연히 베 이불을 사용하여 검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만 하였으니, 이것은 검소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공손홍은 청렴을 가장하여 이름을 낚는 속임수를 쓴 인물로 <한서(漢書)> 공손홍전에서 묘사된다.

고전 하나를 더 끌어와 본다. 중국 고전 <중용> 첫 장에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길이란 잠시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길이 아니다"는 의미.

여기서 길을 '청렴'이라는 단어로 바꿔보자. "청렴이란 잠시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청렴이 아니다." 맹사성은 이 말대로 살았다. 그에게 청렴이란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평생의 큰 지표이자 원칙이었다.


맹사성의 청렴 일화 중 하나가 '인침연(印沈淵)' 이야기다. 한번은 검은 소를 타고 하인도 없이 경기도 평택을 지날 때다. 미리 맹정승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고을 수령이 길목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온다는 정승 대신 볼품없는 한 노인이 지나갔다.

"비켜서라!"

수령이 호통을 쳤다. 아뿔싸, 그가 바로 맹정승이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수령은 차고 있던 도장인 관인(官印)을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여기서 '인침연(印沈淵)' 이야기가 나왔다.

맹사성의 청렴은 문정(文貞)이라는 시호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은 "충신(忠信)하고 예로써 사람을 대접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청백(淸白)하게 절조를 지킴을 정(貞)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맹사성의 미덕은 청렴뿐 아니라 겸손에도 있었다. 죽고 난 후 사관들이 쓴 졸기(卒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비록 품계가 낮은 이가 찾아오더라도, 맹사성은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까지 나와서 맞았다. 손님은 반드시 윗자리에 앉혔고, 손님이 떠날 때는 몸을 굽히고 손을 모아 절한 다음 그가 말에 올라탄 뒤에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세종실록 1438년 10월 4일)

실록을 보겠다는 세종도 돌려세운 '강직한 선비'

윗사람에게 예를 다하는 건 쉬워도, 아랫사람을 진심으로 공경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맹사성의 그런 온화함 뒤엔 강직함도 숨어 있다. 태종실록 편찬에 얽힌 일화다. 맹사성은 우의정 때 태종실록 감수를 담당하는 감관사(監館事)를 맡았다. 당시 세종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치적이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몹시도 궁금했다.

"실록을 내가 한번 보려고 하는데 어떤가?"

맹사성은 거절했다. 마치 임금을 부드럽게 꾸짖듯 했다.

"전하께서 만일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사관도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세종실록 1431년 3월 20일)

세종이 "그러겠다"며 뜻을 거두었다.


국왕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킨 맹사성의 태도는, 단지 '청렴한 사람'이라는 미덕을 넘어선다. 권력과 맞닿은 순간에도 침묵하거나 굽히지 않고, 기록의 진실성과 후대의 교훈을 지킨 그 용기, 그것이 진짜 강직함이다.

맹사성의 청렴·강직은 조부와 아버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려 최영 장군과 친분이 두터웠던 조부 맹유는 손자 맹사성을 최영 장군 손녀에게 장가보냈다. 그런 맹유는 조선 개창 후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두문동 72현으로 순절했다.

맹유의 아들이자 맹사성의 아버지인 맹희도는 정몽주와 교유했는데, 벼슬을 버리고 온양에 은거했다. 그런 맹희도와 맹사성은 '삼강행실도'에 효자로 이름이 오를 만큼 효행의 표본이기도 했다.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고택을 물려받았다. 아산 배방읍의 맹씨행단(孟氏杏亶)이 그 집으로, 개인 고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창 맹씨 문중에서 가보처럼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맹씨행단 옆에 위치한 고불맹사성기념관에도 전시되어 있는 물건이다. 훗날 영조 임금이 온양에 행차하였다. 영조는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의 묘소에 제(祭)를 올리게 하고 어필 사액을 내렸다.

충효세업 청백가성(忠孝世業 淸白家聲)
"충과 효를 대대로 힘써 왔으며, 청렴과 결백은 가문의 영광이니라."

이 문장을 되새겨 보았다. 고불의 삶을 보는 듯했다. 임금의 어필이 마치 고불의 유언인 듯 향기가 났다.